목차
청동 미륵반가사유상
대웅전을 나서고 보게 된 반가사유상이다.
청동으로는 세계최대규모라고 한다.
12 지신
12 지신 석상이다.
청동미륵반가사유상과 마주 보며 있다.
각기 12 지신의 머리 위에 지폐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대야 머리 위에 이고 밭으로 가는 아낙네가 떠오른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와불부처님이 계신다.
합장을 하고 무언갈 기원하는 듯한 모습이다.
염주를 걸고 머리를 깎은 모습이 스님인 듯하다.
네팔전각
계단을 오르는 중에 보면 네팔국민이 기증한 사원이 있다.
부처님의 모습도 형상도 대한민국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돌리면 빙글빙글 돌아간다.
다큐멘터리에 보면 참배자들이 이것을 만지면서 지나가면 이 원통이 회전한다.
얼핏 기억나는 대로 말하자면 돌리는 것 만으로 경전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확실치 않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종도 있다.
이곳 네팔법당에서 예불할 때 쓰는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원통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있으니 돌리면서 사원을 돌면 된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열반전이다.
이 역시도 세계 최대 규모라는 누워계신 부처님 즉 와불이 있다.
와불에 앞서 이 특이한 기와를 쌓아 만든 불탑에 시선이 자꾸만 간다.
탑과 금강역사가 나란히 열반전 앞에 서 있다.
금강역사
우리가 사찰에 가면 잘 볼 수 없는 분들이다.
사천왕과 같은 분들은 눈도 얼굴도 몸도 우락부락하지만 그 위에 옷을 화려하게 입고 있다.
항상 보는 모습이라 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금강역사는 보통 뭘 잘 걸치지 않으신다.
다른 곳에서 금강역사의 근육질 석상을 한번 보았기에 이곳의 금강역사에 상당히 감명을 받는다.
이 근육이라면 가히 마왕이라 할지라도 맞아 죽을 것 같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각이 너무 디테일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화강암 특유의 점박이도 보이지 않고 화강암 치고는 너무 색이 어둡다.
면이 매끈하고 군데군데 약간 투박한 석재 조각에서 보일법한 조각이 보이지만 일부분일 뿐이다.
빗물에 이끼가 심하게 껴서 색이 바랬다고 하기에는 너무 색감이 고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동상인 것 같다.
둘러볼 때 호기심을 갖고 가까이 가서 보았다면 확실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와불부처님
열반전으로 들어왔다.
세계최대 인도네시아산 향나무를 통으로 조각하였다고 하니 대단한가 보다.
향나무라 하면 이 정도로 큰 고목나무로 자라기는 매우 어렵다.
고온다습한 동남아의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면서 오랜 시간 베어 넘기지 않은 덕분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한쪽에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태국사원
태국 국왕이 취임 80주년을 기념하여 기증한 사원이다.
남방 불교식이며 석가모니 금동불상이다.
금동불상은 재료를 어떻게 합성하느냐에 따라 금빛을 띠지만 청동 특유의 녹이 스는 청동이 있고
아예 금처럼 보이도록 할 수 있는 합금도 있다.
보기에 아예 금처럼 보이도록 합금을 만든 것 같다.
태국 석가모니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랫배가 젖가슴처럼 갈라져 있다.
저게 무슨 의미일까?
허리가 잘록하고 손이 가늘고 길며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이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남성적인 면도 느껴지며 얼굴은 남성적인 모습이다.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황금색이다.
사원을 태국식으로 지은 것인가 했는데 그것은 아닌가 보다.
태국의 사원이 한국의 기왓장으로 사원을 짓는 것이 전통은 아닐 것이다.
앞에 커다란 향로가 있으며 개방된 장소이기 때문에 용인 와우정사에 올 때는 향과 라이터를 들고 와서 향을 피우면 좋을 것 같다.
한편에서 공양물을 판매하고 있다.
문이 닫혀있는 것으로 보아 안에 사람이 상주하나보다.
초는 무인판매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는 이렇게 창문을 열고 안에다가 넣어두면 된다.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자갈돌탑
이런 돌탑은 마이산에서 보았다.
이곳 돌탑도 눈길이 가지만 아무래도 마이산 돌탑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오르는 길에 동자승석상이 있습니다.
이 벽화는 하나하나 다 찍어두었다.
인도가 피라국 숫도 다니 왕은 왕자 없이 큰 걱정을 하던 중에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가 인간세계에 내려오는 꿈을
마야부인께서 꾸셨다.
부처님의 생애인 듯하다.
기원전 623년 4월 8일에 룸비니 동산에서 싣달다 태자께서 탄생하시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홀로 존귀하다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말씀 하시였다.
약사여래불
그러는 와중에 약사여래불이 계신 곳에 도착했다.
갓을 쓰고 약병을 손에 올려두었다.
특이하게 작은 돌들로 탑을 쌓고 그 위에 연좌대가 아닌 구름 같은 좌대에 앉은 약사여래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가 오는 날씨였는지 부처님 모습 주변으로 비 떨어지는 잔상이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찍었다.
역시 구름 같은 모습의 좌대이다.
독특하다.
그래서 돌탑을 높게 쌓아 산 꼭대기 구름 위에 있는 듯 만들었나 보다.
곧 출가하실 듯 한 벽화이다.
가장 꼭대기 쪽 사원에 백옥으로 만든 고행하는 부처님이 계신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이런 벽화가 나열되어 있다.
사대문을 나가 처음으로 궁궐밖의 세상 구경을 하시던 중에
사람들이 병들고 늙고 죽은 사람을 보시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으셨다.
네 번의 문을 나오시여서는 수행자가 편안한 얼굴로 수행하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편안하시었다.
드디어 모든 것을 버리고 궁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2월 8일 한밤중에 수행자가 되리라는 뜻을 품고 부귀영화와 왕자의 자리와 아내와 자식도 버리시고
왕궁을 넘어 마부 차익만 데리고 떠나 설산으로 향하시었다.
이때의 나이가 29세 이셨다.
고행하시는 모습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고행을 한 번은 하는 듯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지나고 보니 그것들이 고행이었구나 하는 때가 올 것이다.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시고 나서 수행은 거문고와 같이 너무 팽팽해도 줄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안 좋은 법으로서 중도에 있어야 소리가 아름다운 법과 같이 수행도 중도의 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었다.
오백나한전
수많은 석상이 모여있다.
이곳은 오백나한전이며 수많은 분들이 모셔져 있다.
앞쪽 연좌대 위 한쪽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두 분은 보살님인 듯 보인다.
그리고 나한석상의 꼭대기에서 조금 아래에 누워계신 와불이 있는데 그 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인 듯하다.
원래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주변에 나한을 모신다.
이백만 원만 있으면 오백나한전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한 분의 나한을 모실 수 있는 듯하다.
벽화를 보며 좀 더 위로 올라간다.
마침내 부처를 이루셨다.
보리수 아래서 마구니들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12월 8일 북두칠성을 보시고 해탈을 하시었다.
번뇌의 불은 꺼지고 고타마 싣달타는 열반에 이르시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이때가 35세 이시다.
설법을 하신다.
녹양원에서 최초로 인류중생을 위하여 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고.집.멸.도 사체법을 위시하여 팔정도 그리고 십이연기의 진리를 설법하시고 이후 45년간 금강경. 능엄경. 법화경. 원각경. 화엄경 등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다.
열반에 드셨다.
2월 15일 80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인도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대반열반경"을 강론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진리에 귀의하고 자신을 등불로 삼고 수행정진 하라 하시고 열반에 드시었다.
대한불교 열반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을 이어서 대반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석가모니 열반불을 본존불로서 봉안하고 수행정진 하는 전통의 불교 종단이다.
이로써 벽화가 끝난다.
미얀마 사원
이곳은 미얀마 백옥으로 만든 고행하는 부처님상이 있는 사원이다.
각국의 불교신자들이 찾아오는 사찰인 만큼 그들의 발걸음을 당기는 무언가가 있을듯하다.
고행하는 백옥석가모니불
부처님께서 명상에 잠기신 모습이다.
앙상한 갈비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몸과 핏줄의 도드라짐이 수행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표정에서는 평온함이 비치니 움푹 들어간 눈과 광대를 보면 안 그럴 것 같이 보이지만 왠지 모를 평온함이 느껴진다.
머리는 기른 모습이고 상투를 튼 모습이다.
이곳에서 무언가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마냥 앉아있었으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부처님을 바라보며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와우정사에는 미얀마와 태국 네팔의 부처님이 계시고 인도의 와불이 계신 곳이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부처님들과 나한님들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삼보를 다 봉안한 곳이기도 한 이곳은 인도와 스리랑카, 미얀마에서 모셔온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으며,
팔리어대장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으니 가히 성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와우정사가 새삼 세계적인 사찰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행일기 > 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봉산 망월사의 추억일기 (8) | 2024.10.21 |
---|---|
용인 와우정사 여행일기 1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 - 입구->대웅전 (0) | 2024.07.04 |
용인 성륜산 천년고찰 용덕사 - 소원이 이루어지는 용굴 속 관음보살 (1) | 2024.06.23 |
만의사 여행일기 5 - 지장전과 천불전 그리고 500나한전과 삼성각 참배 끝. (0) | 2024.05.07 |
만의사 여행일기 4 - 대웅전을 본 후 산신각으로 향하다. (0) | 2024.05.06 |
댓글